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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사모" 상담소장 유사라 목사 인터뷰 기사 입니다.
관리자 14-07-16



이달의 사모

(월간사모 7∼8월 인터뷰 기사)

 

고난의 잔을 영성으로 채운 사모


유사라 사모 (강영선 목사, 일산순복음영산 교회)


 

차를 타고 일산의 외곽지역을 한참 달려서야 단아하고 깔끔한 인상의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마음에 스며드는 조용한 말투, 그러나 속사람은 용암처럼 내재된 영성이 뜨겁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하나님이 그 어떤 고난을 주셔도 기꺼이 받겠다는 인생철학을 가진 여인. 그녀는 남편을 왕이 되게 하고, 남편의 사역에 최대한 협조하면서 고난을 피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녀 역시 고난의 잔을 들고 닥쳐오는 고난을 차곡차곡 채워가면서 하나님이 주실 상을 기대하였단다. 그녀의 그러한 신앙자세가 출석인원 1만명의 성도를 섬기는 사모가 되게 하지 않았을까! 그녀는 또 사모의 그릇에 따라 남편목사의 목회도 달라짐을 강조한다.

인터뷰 - 박미례 사모

 

 






사모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산 시내 쪽에서 오지 않아서인지 교회까지 오는데 동네를 전혀 만나지 못했습니다. 일산과는 거리가 멀고 교통도 불편할 것 같습니다.

- 네, 대중교통이 전혀 없어 자가용이 없는 분들은 교회 오기가 힘듭니다. 일산 시내에서 저희 교회에 오는데 꼬불꼬불한 길을 다 지나서 와야 하니 아마도 여의도나 서대문에서 오는 것이 빠를 거예요. 주일에는 전세버스를 운행하기 때문에 괜찮지만 평일에 교회에 오려면 하루를 잡고 와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청년들이 평일에 교회 나오기란 쉽지 않지요.

교회에 무슨 행사가 있을 때도 성도들이 참석하는데 불편을 많이 느낄 수밖에 없고요. 교회가 주택가 안에 있다면 일하다가도 잠깐 참석할 수도 있을 텐데 우리는 일부러 하루를 빼야 하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데려와야 하고 데려다줘야 하기 때문에 전도하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조용기 목사 성역 50년 기념교회’라고 써져 있던데, 교회가 이렇게 외곽에 있는 이유와 연관이 있을까요?

- 글쎄요..., 여의도순복음교회 지교회로 일산 백석동에 교회가 있다가 독립한 지가 5년째 들어서는데요, 원래는 이곳이 쓰레기 매립장이었다고 합니다. 교회가 이 땅을 매입해서 교회를 세우게 되었는데 이곳으로 옮기고 나서 성도들도 많이 줄었습니다. 교통이 없다보니 비가 와도, 눈이 내려도 버스를 기다려야 하고, 추우면 추운대로 서서 기다려야 하니 당연한 현상이었는지도 모르지요.

 

현재 성도 수가 어느 정도 되며, 불리한 지역적인 특성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비결이 어디에 있을까요?

- 현재 재적인원이 2만 5천명이고, 출석인원은 1만 명으로, 처음 이곳으로 이사 와서는 지역적인 어려움 때문에 성도들이 많이 흩어졌습니다. 2007년 7월쯤 남편목사님이 부임해 오면서 교회가 성장하기 시작했는데, 지속적인 성장의 비결은 목사님이 목숨 걸고 설교를 준비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목사님이 목회한 지가 40년이 되었습니다.

그 정도 되었으면 설교의 달인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텐데 한번 자리에 잡으면 일곱, 여덟 시간을 화장실 한 번 안 가고 준비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설교준비를 최우선으로 합니다. 말씀이 아니라면 이렇게 외진 곳에 누가 오겠는가하는 생각에 더욱 설교준비에 목숨을 건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기존에 어렵게 생활하시던 분들을 포함하여 여러 계층의 성도들이 이곳저곳에서 모이고 있습니다.

 

제가 사모님에 대해서 듣기로 목사안수도 받으셨다고요. 목사안수를 받으시고 나서 교회에서의 역할이 달라졌는지 궁금합니다.

- 네, 2011년에 목사안수를 받았으나 특별히 역할이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하던 대로 지금도 하고 있고요. 단지 목사안수를 받지 않았을 때보다는 성도들에게 신뢰감을 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사모일 때는 신학을 하지 않았기에 같은 평신도적인 입장으로 볼 수가 있지만, 목사안수를 받으면서는 사모이면서 목사라는 것 때문에 영적인 측면에서 권위를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여전히 조용하게 사모로서 할 일을 하고 있어서 대부분의 성도들이 저를 ‘사모님’이라고 부릅니다만, 어떤 분들은 ‘목사님’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자유롭게 부르고 있으나, 오랫동안 사모로 불렸기 때문에 사모가 더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 사모님께서 맡으신 파트가 있는지요?

- 상담을 맡고 있습니다. 영산상담코칭센터 소장직을 맡고 있는데, 내담자 대부분이 저희 교회 성도들입니다.

 

성도들이라면 주로 어떤 내용으로 상담을 해오는지 궁금합니다.

- 성도들이라 신앙문제로 상담해올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부부문제와 자녀문제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부부문제가 비중이 큰데, 그만큼 상담내용도 다양하나 대체로 성격차이나 외도문제 때문에 상담을 해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 존중하고 신뢰한다면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그러지 못하는데서 부부관계에 금이 가고 외도로까지 발전하는 것 같습니다. 부부일수록 서로 더 존중해야 합니다.

 

사모의 정체성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면?

- ‘사모란 사명자이다’라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사모는 내조자이지만 단순한 내조자가 아니라 사명자로서의 내조자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명자로서의 내조자란 남편을 왕으로 세우는 내조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부부라지만 신앙도 다르고, 기질과 성격도 차이가 있고, 가치관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보기에 아니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련하는 방편일 수 있다, 즉 내가 생각할 때 그쪽으로 가면 반드시 고난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남편이 굳이 그쪽을 선택해서 간다면 그 길을 따라주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이것도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인가 보다. 이 과정을 통과해야지만 그 다음 것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항상 먼저 생각합니다.


 


목사님께서 가고자 하는 길이 고난의 길이 빤하다면 목사님께 조언하거나 설득해서 방향을 바꾸도록 할 수 있지 않을까요?

- 조언은 할 수 있겠지요. 내 생각은 이렇다고 말할 수는 있겠으나 바꾸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꾼다는 것은 하나님과 연관된 것을 바꾸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내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신 것이라면 가야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항상 저는 현재 일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섰을 때를 동시에 바라보면서 남편의 선택에 순종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누구를 먼저 세웠는가를 생각하는 것이지요. 남편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기를 원하신다는 것이 우선순위로 되어 있기 때문에 고난의 삼각지대로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나를 훈련하시고 내 남편도 훈련하시는 과정이라 보고 오는 것 모두 받아들입니다.

고난의 잔이 있다면 그 잔을 끝까지 다 채우기 위해 모든 상황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가보리라는 마음으로 따르는 것이지요. 그런 생각이 있어서 저는 항상 머릿속에 잔을 드는 상상을 합니다. 잔을 들고 ‘이것 피하면 다음에 더 힘들어. 이것도 받아, 이것도 받아’라며 다 채우면 하나님이 무엇을 준비하셨을까 기대합니다. 잔을 다 채우기 전에 좋은 것을 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지만, 갈 때까지 가보자라는 것이지요.

 

목사님의 가장 큰 장점은?

- 저희 목사님은 신앙적인 주관이 뚜렷해 흔들리지 않는 타입입니다. 제 말에 “그럼 그렇게 해볼까”라는 게 결코 없으니까 아내인 저도 그 무엇으로도 목사님을 흔들 수 없습니다.

한번 뜻을 세우면 무조건 그 뜻을 향해 가는 성격이라 따라주든지 아니면 도망가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다가 중간에 싫어지거나 포기하는 경우는 절대 없으니까요.

그래서 설교준비도 목숨을 걸고 하세요. 그런 모습들이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모님께는 어떤 남편이신가요?

- 어른이신데, 어떤 어른이신가 하면 독립군형 아버지(웃음). 나이는 두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 섬겨야 하는 아버지인 것 같습니다. 남편이라기보다는 아버지가 하시고 싶은 것 마음대로 다 하시도록 살림밑천이 된 맏딸이 수발을 들어주고 섬겨줘야 한다고나 할까요. 그러다보니 저에게는 정신적으로 한 스무 살이 많은 어른 같습니다.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실수 없이 하시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있었습니다.

 

절대 존중, 절대 신뢰이시네요.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한 사모의 자세가 하신 말씀 속에 담겨있는 듯합니다. 사모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 사모라는 자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훈련을 받아야 하고,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훈련을 받아야 하고, 성도와의 관계에서도 훈련을 받아야 하며, 또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훈련을 받아야 하기에 때문에 굉장히 외로운 자리이긴 합니다. 그런데 그런 훈련을 통해서 사모도 영성이 자라는 것입니다. 목회는 남편만 하는 것이라고 자칫 생각하기 쉬우나 사모의 그릇만큼 주의 종을 축복하신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같이 훈련을 받아야 하고, 같이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꼭 앞서야만 군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자기 안에서 충분히 영성화시키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남편을 육적으로, 세상적으로 비교해서 바라보면 사모는 너무 외롭고, 슬프고, 애매히 고난을 받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모도 영성화가 돼서 영적으로 남편을 바라보고 남편이 조금도 흠이 없게끔 왕으로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짝이라면 그 짝대로 맞춰 가야 합니다. 그러면 내가 손해 보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사모의 그릇을 보시고 주의 종도 축복하시고 사모에게 일할 수 있는 사명을 그때 주십니다.

사모의 영성화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환란과 고난과 가시 찔림을 내재화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사모도 이거냐, 저거냐를 정해야 됩니다.

일반 아낙네처럼 나는 목사랑 결혼했으니 어쩔 수 없이 사모로 사는 거야가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적극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됩니다. 어차피 이 길에 들어섰기 때문에 죽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사모님은 소명의식을 가지고 사모의 역할을 담당하고 계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진될 때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되는데.

-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내가 신이 됐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모든 것을 내가 만능으로 할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은데 소진되다보니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소진될 때조차도 마치 엘리야가 우울증에 빠져서 아무것도 먹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 그때그때마다 위로해 주셨듯이 그것도 훈련의 일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끝까지 잘 견뎌나가야 하겠지요.

 

소진을 가져왔던 원인이 될 만한 일이 있었을 텐데요, 한두 가지만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사실 목회하면서 환란과 고난이 일 때는 소진을 생각할 여력조차도 없었습니다. 살아내야 했고, 그것을 견뎌내야 했으니까 소진을 느낄 겨를이 없었지만, 모든 것이 지나가고 잠잠해졌을 때 내 자신을 돌아보고 지나온 세월을 반추해보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과거 미국에서 이민목회를 할 때 아이들을 키우면서 잘 집이 없어 교회 한 귀퉁이에 칸을 막아 널빤지를 깔고 산 때가 있었습니다. 상업건물에서 사는 것은 불법인데, 어느 날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쳐 놀라 아이들을 데리고 추운 겨울에 맨발로 뒷문으로 도망쳤습니다.

눈이 하얗게 쌓여있는 길을 아이들과 도망가서 숨어 있다가 경찰이 돌아가고 난 다음에 돌아온 적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안정적으로 목회를 하시다가 오신 것으로 들었습니다.

- 네, 건축을 모두 끝내고 안정적으로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3, 4십대를 그곳에서 보냈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에 저희는 평생 그곳에서 목회하게 될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하나님이 우리를 이곳에서 뽑아 다른 곳으로 보내지 않으시면, 아무리 힘들어도, 어디서 좋은 조건으로 오라 가라해도 저는 안 간다고 목사님께 얘기했습니다. 죽으면 죽고, 살면 살고 여기서 끝까지 하나님이 주신 것 다 감당하고 나서 하나님이 콜링할 때까지 움직이지 않겠다는 각오였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부흥되어 너무나도 즐겁게 눌루랄라하면서 지내던 어느 날 조용기 목사님께서 저희를 한국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렇게 안정된 교회를 놓고 온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서 처음엔 목사님도 잠시 머뭇거리셨습니다.

그 순간에 저는 가야된다는 느낌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가자고 했더니 목사님께서 깜짝 놀라셨답니다. 전 재산과 모든 것을 쏟아가며 아이들에게 100원짜리 아이스크림 하나 사주지 못하면서까지 헌신했던 목양지가 부흥되어 평안을 누리고 있었기에 반대할 줄 알았던 것이지요. 저는 이민목회는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훈련하는 기간으로 생각했고, 저희 목사님은 대중적인 설교자이기 때문에 더 큰 그릇에 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습니다.

 

자녀는 몇이나 두셨는지요?

- 딸만 둘입니다. 둘 다 지금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하나는 출가했습니다. 88년도에 선교사로 갈 때 큰애는 초등학교에 들어갔고, 작은애는 유치원에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미국에서 살아서인지 미국생활을 더 자유롭게 여깁니다.


대형교회의 문제점에 대해 말들이 많습니다. 순복음영산교회도 대형교회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사모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저희는 개척교회도 해봤고, 대형교회도 해봤기 때문에 오히려 대형교회가 유익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봉사할 수 있는 분야도 많고, 선교나 사역을 할 때도 힘이 있고요. 저희 교회만 해도 70개 교회를 후원하고 있는데, 대형교회를 하고 싶다고 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맡기셨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저도 교회를 왔다갔다하다가 어느 날 우리 교회를 한번 올려다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어떻게 인간의 힘으로 이 큰 교회의 목사와 사모가 될 수 있었겠는가! 100일을 금식하며 기도한다고 되겠는가! 하나님께서 맡기셨기 때문에 성도들이 오는 것이지.’

이렇게 된 것은 내가 잘해서, 사람이 좋아서도 아니고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선택해서 맡기셨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대형교회나 소형교회나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비난을 사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비난을 사지 않기 위해서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 교회 안에서도 성도들이 자기를 돌아보고, 영성화해야 합니다. 그냥 잘되고, 내 마음이 편안하고, 천국에 가는 것이 다가 아니라 과연 내 안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성품들이 들어있나 자기를 돌아보고, 또 되새김질하여 옛사람의 옷을 벗어버리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옛사람의 옷이 구원받았다고 어느 날 갑자기 벗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해주셨지만 그 다음부터는 새사람의 옷을 입기 위해 계속적인 자기 노력이 필요합니다. 더러워졌으면 다시 벗어서 빨아야 하는 훈련과 회복이 계속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주님 나라 갈 때까지 늘 나를 회복시켜 달라는 것이지요. 죄는 내게 은혜가 있을 때는 머물지 않지만, 은혜가 떨어졌을 때는 여지없이 내 안에 머물게 되기 때문에 항상 가슴에 예수님의 심정을 되새기면서 나를 영성화시켜 세상 사람과 구별됨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될 때 그들은 ‘저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라 역시 다르다’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실지 생각하며 점검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1분 1초라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 대안이 아닐까요?

 

어떤 목회자나 사모는 습성과 타성에 젖어서 생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열심히 목회를 하지만 수년이 흘러도 여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회들이 많음을 월간사모를 10년째 발행해오면서 목격하게 됩니다.

- 정말 훌륭하게 열심히 하셔도 제자리걸음으로 어려운 분들도 많고, 하나님만이 판단하시고 아실 일일 것 같습니다. 제 자신도 사실 개척하여 사역하면서 내 앞길이 어떻게 펼쳐질 지 그때는 잘 몰랐으니까요. 너무 고통스러울 때는 평생 이렇게 살다가 가야하는가 보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이렇게 큰 교회 사모가 될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나님이 그분들을 어떻게 훈련하실지 우리는 판단할 수도, 알 수도 없습니다. 저도 밑바닥에서 살다가 끝나련가 보다 할 정도로 지지리 가난하여 아이들 과자 하나 사줄 돈도 없고, 잘 곳도 없고, 여름 몇 날 동안 쓰레기통 옆에 방치되어 있어 독성이 생긴 화장품을 주워다 쓰다가 얼굴이 뒤집어진 적도 있고요. 하나님께 화장품 좀 달라고 기도를 했더니 이렇게 샘플을 대량으로 주셨구나!, 하며 온몸에 로션을 바르고, 얼굴과 목에도 번들번들하게 발랐는데 그 다음날 얼굴이 빨갛게 변해 있었습니다. 그게 가라앉고 나자 논바닥 갈라지듯 갈라지면서 피부가 파진 만큼 껍질이 노랗게 일어나는 거예요. 그 다음날이 주일이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계속 벗겨내고, 혹시 성도들이 그런 나를 볼까봐 맨 뒷좌석에 앉아 숨어 예배를 드린 적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한치 앞이 보이지 않으면서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물은 적도 있습니다. 그랬는데 오늘날 이런 자리에 오게 될 줄 그 순간에 누가 알았겠어요.(웃음) 이런 거 저런 거 이야기하려면 끝도 없고요, 책으로나 써야 할 거예요.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과 좋아하게 된 이유는?

- “현재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는 로마서 8장 18절의 말씀을 항상 마음에 되새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현재 너무 힘드니까 하나님이 심심해서 나에게 고난을 주신 것이 아닐 것이고, 이 고난을 다 채우면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 하면서 그분의 영광을 항상 바라보는 것이지요. 설사 주시지 않는다 해도, 이대로 살다 간다고 해도 현재를 살아내야 하니까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우리가 하소연할 때가 없잖아요. 그 다음에는 시편 121편을 생각합니다. 다윗의 고난을 묵상하는 것이지요. 제가 너무 고난을 오랫동안 당했기 때문에 고난에 대한 성경구절을 많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현 상황에서는 좋아하는 성경구절도 바뀌어야 하지 않나요?(웃음)

-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 말씀이 마음에 다가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사랑은 오래 참고. 진짜 ‘맞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오래 참으니까 하나님이 결국 보상을 해주시더라는 것을 실감하거든요. 나도 몰랐고, 세상 사람들도 몰랐던 것을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환란은 인내를, 인내를 연단을, 연단을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는 말씀도 와 닿습니다. 억울한 일이 있을 때,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싸우자고 성도들에게 덤비지 않고 그냥 참 잘 참았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참으니까 그것이 제게 연단이 되었고, 연단 속에서 내가 영성화가 됐고, 사람이 어떠한가를, 각 사람의 기질이 어떠한가를 판단하게 되어 나의 거울로 삼게 되더군요. 예전에는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였는데, 지금은 ‘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 내 속에도 있구나! 이런 나를 예수님이 참아주셨구나!’라며 나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끝으로 후배 사모님들에게 권면해주신다면?

- 일단 사모가 되었으면 남편을 왕같이 섬겨야 된다, 내가 상관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남편을 통해서 일을 하신다, 내가 순종하는 것이 바보 같고 지는 것 같지만 남편을 세우면 하나님은 사모의 그릇을 보시고 사모도 세우신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상담소 소장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누구를 상담하고, 누구를 가르치고, 상담강의를 하리라는 것을 상상이나 해봤겠습니까? 상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사모도 세움을 받을 때가 있는 것이지요. 그 때를 위해 자기의 영성의 그릇을 깨끗이 닦고, 작은 그릇을 가지고 있다면 자꾸 자꾸 그릇을 키워서 고난이 올 때 남김없이 받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종함으로써 지름길로 갈 수 있었는데 불순종하여 피함으로써 돌아가게 되었잖습니까? 고난을 피하지 말고 고난 뒤에 반드시 하나님의 상이 있음을 기억하고 받으시기 바랍니다. 받아 꿀꺽 삼키고 나면 그 다음에 뭐가 있을지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때까지 살아남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고난의 때에 무조건 살아남으라고 말합니다. 그 시와 때는 하나님만이 아시잖아요. 제가 3, 4십대에 얼마나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59인데, 50이 넘어서야 받았습니다. 남편이 왕이 되게 하고, 남편의 사역에 최대한 협조하면서 고난을 끝까지 감당하시기 바랍니다.